https://www.youtube.com/watch?v=fDcW_qb-uew
00:00 ~ 30:00
팟캐스트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고마워요.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데이비드 리브가 함께합니다. 그는 구글에서 제품 디렉터로 일하고 있고, 특히 구글 포토를 담당하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모를 수도 있는 사실은, 데이비드가 ‘범프’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하다는 점이에요. 범프는 아이폰 초창기 몇 년 동안 앱스토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앱 중 하나였죠. 그게 어떻게 가능했죠?
진짜 완전 랜덤이었어요. 제가 그때 MBA 중이었거든요. 원래는 엔지니어였고요. 근데 이제 ‘다크 사이드’로 갔죠. 비즈니스 스쿨로요. 그게 2008년 가을이었어요.
그때가 아이폰이 출시된 지 1년쯤 됐을 때고, 그 해 여름에 처음으로 앱스토어를 서드파티 개발자들에게 개방했을 때였어요. 제가 비즈니스 스쿨에 갔는데, 거기서 컴퓨터공학과에 있는 몇몇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 사람들은 그 여름 동안 앱을 몇 개 만들어봤더라고요.
그중 한 명은, 오픈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찾아주는 앱을 만들었어요. 그냥 어떤 와이파이가 열려 있고, 어떤 건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지 알려주는 앱이었어요. 그런데 그걸로 그 여름에 20만 달러를 벌었더라고요.
그래서 전 “야, 우리도 앱을 하나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그때 동시에 저는 비즈니스 스쿨에서 새로운 동기들을 만나고 있었고요.
우리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하는 행동을 반복했어요.
“야, 네 전화번호 뭐야?”
그럼 내가 그걸 입력하고, 그 사람한테 전화를 걸죠.
그럼 그 사람은 부재중 전화가 찍히고, 나한테 이름 스펠링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하루는 그걸 10번이나 반복했어요. 그때 생각했죠.
“이거 누군가가 해결해야 돼.”
“오, 이제 앱이 있으니까 나도 해결할 수 있겠네?”
그래서 예전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한테 이메일을 보냈어요.
그 사람이랑 직접 같이 일한 건 아니고 그냥 아는 사이였어요.
그래서 “아이폰 앱 만들어볼 생각 있어?” 하고 물었어요.
그때 그는 “나는 안드로이드가 더 클 것 같아”라고 했죠.
근데 저는 “그래도 아이폰부터 시작하자. 그게 더 나을 것 같아”라고 했고요.
그래서 그냥 바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만난 사람들하고 번호를 공유하기 쉽게 해주는 앱이었어요. 완전 사이드 프로젝트였고, 저는 비즈니스 스쿨에 다니고 있었고, 그는 자기 일 하고 있었고, 그는 캘리포니아에 있었어요. 그냥 틈틈이 작업했어요.
그리고 나서 세 번째 공동 창업자 제이크 민츠를 비즈니스 스쿨에서 만났어요.
그도 그냥 우연히 같은 반 친구였는데, 알고 보니 우리 둘 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일했더라고요.
그래서 그 얘기를 하다가 팀에 합류하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 셋이서 전부 직접 만들었어요. 여가 시간에요.
그리고 앱스토어에 올렸고,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죠.
우린 “오, 이거 되네?”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2008년이었고, 정식 출시일은 2009년 3월 27일이에요.
그때는 앱이 크게 성공할 거라는 게 정말 뚜렷하지 않았어요.
제가 기억하는 건, 앱스토어 초창기엔 ‘방귀 앱’ 같은 게 인기였어요.
진짜 웃기고 하찮은 앱들이 많았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범프도 그런 ‘재밌고 사소한’ 앱으로 봤어요.
아이폰의 신기한 기능 중 하나로, “가속도 센서가 있으니까 폰을 서로 부딪히면 뭐가 된다” 이런 식이었죠.
그런데 사실 그 ‘신기함’ 자체가 앱의 성장 엔진이었어요.
저희가 3월에 출시했을 때, 처음엔 몇 명이 쓰기 시작했고,
느리게 성장했지만, 그 신기함 덕분에, 그리고 아이폰이 당시에 엄청난 뉴스 소재였기 때문에,
모든 기자들이 “아이폰에서 가장 멋진 앱”을 찾고 있었어요.
제가 기억하는 건, 시카고 트리뷴의 기자 한 명을 비즈니스 스쿨에서 열린 어떤 랜덤한 컨퍼런스에서 만났어요.
그리고 이메일을 보냈죠. “나 멋진 앱 하나 만들었는데 기사 써보지 않을래?”
그 기자가 기사를 썼고, 저는 그 기사를 가지고 또 다른 기자한테 보냈어요.
저널리즘 서열에서 그 다음 단계에 있는 기자에게요.
제가 아마 그걸 뉴욕타임즈의 데이비드 포그한테 보냈던 것 같아요.
“시카고 트리뷴에서 썼지만, 너도 아직 기사 쓸 수 있어”라고 하면서요.
그리고 그가 또 기사를 썼고, 저는 또 그걸 다음 단계 기자에게 보냈고,
결국 점점 더 유명해졌어요.
그때가 아마 앱스토어에서 10억 번째 다운로드가 이뤄질 때쯤이었고,
저희 앱은 앱 차트에서 상위 200위 안에 들었어요.
그래서 그날 하루 동안 다운로드가 엄청나게 많았고,
저희가 10억 번째 다운로드가 될 확률이 2% 정도였어요.
그리고 실제로 저희가 됐죠.
그때 저는 시카고에 있었는데, 애플에서 개발자 관계를 총괄하는 사람이 전화를 했어요.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귀사 앱이 10억 번째 다운로드가 됐습니다.
이 소식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데, 먼저 귀사의 서버가 이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 제가 다시 전화드릴게요”라고 하고 앤디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앤디, 우리 서버 버틸 수 있어?”
그가 말하길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저는 “오케이, 그럼 된 거네. 버틸 수 있다고 하자”라고 했죠.
그래서 “좋아요, 진행하세요”라고 했고요.
그리고 그게 우리를 세상에 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앱을 알게 됐고요.
그때 애플이 우리를 좀 마케팅해주기도 했고요.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그 해 여름에 Y Combinator에 합류한 이후엔,
애플이 우리를 국제 광고 캠페인에 넣었어요.
그게 바로 “앱이 있다(There’s an app for that)” 캠페인이었는데,
혹시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우리는 그 캠페인에 포함됐고, 사실 우리가 그 광고에 들어갈 줄도 몰랐어요.
애플 스타일이 원래 되게 비밀주의거든요.
그냥 “이 서류에 사인해주세요. 귀사의 브랜드를 다양한 곳에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라고만 하니까,
저희도 “그래요, 알겠어요” 하고 사인했죠.
근데 어느 날 Y Combinator에서 어떤 세션이 있었는데,
우리가 서버 그래프를 보고 있었거든요?
근데 서버가 갑자기 미친 듯이 치솟는 거예요. 10분 만에 1000배 수준으로요.
우린 “뭐야 이거 버그야?”라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죠.
“야, 나 지금 Dancing with the Stars 보다가 너희 앱 광고 나오는 거 봤어!”
우린 “와 진짜?”
그리고 그때 우리 서버가 완전히 터졌어요. 모든 게 다 망가졌죠.
그게 제가 처음으로 YC 네트워크의 가치를 체감한 순간이었어요.
저는 YC 창업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혹시 Apache 웹서버에 대해 잘 아시는 분 계세요?”
그게 당시 우리 스택에 있던 웹서버였거든요.
그랬더니 누가 사무실로 바로 와서 책상 앞에 앉더니
“자, 키보드에서 손 떼세요. 우리가 고칠게요.”
그러고는 진짜로 다 고쳐줬어요.
그게 바로, 제가 “아, YC 진짜 쓸모 있네”라고 느낀 첫 순간이었어요.
제가 폴 그레이엄이랑 이걸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야기 나눴을 때,
그가 “내가 왜 이게 가치 있는지 미리 설명은 못 하겠지만,
분명히 알게 될 거다”라고 했거든요.
그때 저는 “아, 진짜네” 싶었어요.
어떻게 YC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그 전까지는 YC에 대해서 아예 모르던 상태였나요?
맞아요, 전혀 몰랐어요.
제이크랑 저는 비즈니스 스쿨에 있었고,
테크에 대해 배우려고 노력 중이었어요.
왜냐하면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여름 인턴십을 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린 어디서 인턴해야 하지?” 이러면서,
TechCrunch를 엄청 읽었어요.
거기서 계속 Y Combinator라는 걸 보게 된 거예요.
“이게 대체 뭐지?” 싶었고,
마침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이미 거길 졸업했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직접 물어보러 갔어요.
저는 ‘Wattvision’을 했던 새비지라는 사람을 알았는데,
가서 얘기했더니 “너네도 꼭 해봐야 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도 결국 지원했고,
인터뷰를 보게 됐어요.
그게 되게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저는 테크 세계에 완전 외부인이었으니까요.
누가 인터뷰를 봤어요?
우린 PG, 제시카, 로버트 모리스, 그리고 트레버였어요.
그 네 명이요? 상상이 되네요.
우리가 들어가서 앉자마자,
제가 입 열기도 전에 폴이 말했어요.
“폰 줘봐요. 써보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폰을 건넸고,
그들은 그냥 막 써보기 시작했어요.
RTM은 “이거 해킹해서 깨볼게” 이러면서,
“우리 다 같이 동시에 범프 해보자. 그러면 깨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식이었고요.
그리고 제가 또렷이 기억하는 건,
제시카가 “너희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야?”라고 물어봤어요.
“그 얘기 좀 해줘요.”
그 질문이 나왔을 때,
“아, 이 사람은 창업자 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보는구나” 싶었어요.
우리가 서로 어떤 배경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싶어 하는 거예요.
반면에 트레버랑 로버트는 그냥 기술을 해킹하고 있었어요.
그야말로 ‘너드’들처럼요.
되게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우리 인터뷰 중에 나온 가장 놀라운 말은,
어느 순간 PG가 갑자기 멍하니 생각에 잠기더니,
“이거, 구글보다 더 커질 수 있을까?”라고 한 거였어요.
저는 속으로 “와, 미쳤나? 지금 무슨 말을…” 이랬죠.
근데 그게 PG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거예요.
처음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것도,
진짜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인 거죠.
정말 멋지네요. 그럼 YC 안에서, 예를 들면 데모데이 이전까지 어떤 메트릭을 설정했었나요?
우리는 진짜 철저하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걸 사용하느냐”
“얼마나 자주 사용하느냐”
이 두 가지에 집중했어요.
그게 우리가 집중한 핵심 지표였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게 그렇게까지 집중할 만한 건 아니었던 것 같긴 해요.
근데 당시엔 우리 둘 다 이쪽 분야에 완전 초짜였기 때문에,
뭘 더 잘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리고 사실 그게 우리가 범프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 중 하나였어요.
우리는 엄청나게 성장했거든요.
범프는 누적 다운로드가 1억 5천만 회까지 갔어요.
그리고 최고일 때는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천만 명에 달했죠.
그 당시 인터넷 환경에서는 진짜 큰 숫자였어요.
10년 전 기준으로 보면 엄청났죠.
우리가 계속 보고 있던 지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걸 쓰고 있느냐”
“하루에, 혹은 한 달에 범프가 몇 번 발생하느냐” 였어요.
근데 우리가 제대로 추적하지 못한 부분은,
“오늘 이걸 사용한 사람들이 이후에도 계속 쓰느냐”
“사용 빈도는 어떤가”
“리텐션 커브는 어떻게 생겼나” 이런 거였죠.
기억나는 게, 우리가 투자 유치하려고 미팅할 때,
VC들이 항상 물어봤어요.
“코호트 리텐션 커브가 어떻게 되나요?”
그러면 전 “좋아요”라고 대답하고,
뒤에 가서 “코호트 리텐션 커브가 뭐지?” 이러면서 구글링했죠.
“대체 이 사람들이 말하는 이 지표가 뭘까” 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근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사실상 가장 중요한 지표였어요.
우리가 실제로 경험한 범프의 리텐션 패턴은 이랬어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 코호트 리텐션은 꽤 괜찮았어요.
사람들이 앱을 설치해두고, 언젠가 다시 썼어요.
폰에 남겨두고, 나중에라도 사용하긴 했어요.
문제는 사용 주기가 너무 길었다는 거예요.
사용 빈도가 너무 낮았어요.
그래서 우린 생각했죠.
“사용자 수가 이렇게 많으니까 이걸로 사업을 키울 수 있겠지.”
근데 사용자가 많아도,
그들이 제품을 자주 안 쓰면,
그 한 번 한 번의 사용에서 엄청난 가치를 뽑아내야만 했어요.
근데 범프의 경우, 사용자 한 번당 가치는 솔직히 낮았어요.
“있으면 좋고, 편하긴 한데, 굳이 없어도 큰 문제는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고, 어렵지도 않았어요.”
결국 그게 사업적으로 범프를 죽인 이유였죠.
하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긴 했잖아요?
예를 들어, 포토 쪽으로 전환하기 전에 어떤 걸 시도해봤는지 궁금해요.
우리는 진짜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그냥 앱을 유료로 팔까?
혹은, 특정 기능은 유료로 풀고 나머지는 무료로 주는 프리미엄 모델은 어떨까?
스티커 같은 걸 인앱 결제로 팔아보기도 했고요.
이런 것들을 아주 작은 단위의 테스트로 해봤어요.
1% 사용자 대상 A/B 테스트 식으로요.
광고도 넣어봤어요. 아주 소규모로 테스트했죠.
결국 우리가 내린 결론은,
사용자 한 명당 1년에 평균 1달러 정도의 수익이 가능하다는 거였어요.
우리에겐 월간 활성 사용자 1천만 명이 있었으니까,
“와, 이건 나쁘지 않네. 괜찮은 사업이야.” 라고 생각했죠.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나쁘지 않은’ 수준의 사업이지,
막 VC 펀딩을 수십억씩 받으면서 확장해나갈 사업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게 아마 2012년 초였던 것 같아요.
그때 우리가 느꼈죠.
“아, 이거 우리 계획이 좀 잘못됐네.”
왜냐면 그 전까지의 전략은,
“성장, 성장, 또 성장.”
“페이스북도 그렇게 했고, 트위터도 그러고 있고, 우리도 그냥 따라가면 돼.” 이런 식이었거든요.
근데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랑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몰랐던 거예요.
그럼 그 제품은 어떻게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거예요?
범프가 그렇게 커진 이유는 뭐였죠?
100% 입소문이었어요. 완전한 바이럴.
우리는 고객 유치 비용으로 단 1달러도 쓰지 않았고,
마케팅에도 돈을 쓰지 않았어요.
제가 항상 얘기하던 일화가 있어요.
우리가 마케팅에 쓴 돈은 총 42달러였고,
그건 제가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사기 위해 쓴 돈이었어요.
빌린 캠코더에 넣을 테이프랑,
뒤에 배경으로 깔 검은 펠트 천을 사려고 쓴 거였죠.
그래서 그걸로 우리 아파트에서 데모 영상을 찍었어요.
그게 전부였어요.
사람들이 이 앱을 괜찮다고 생각해서,
친구한테 “야 이거 해봐, 나 방금 멋진 앱 하나 받았거든” 하고 보여준 거죠.
우리는 사실 이 앱이 커지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이게 치킨 앤 에그 문제잖아요.
나 혼자 설치한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상대방도 같이 설치해야 하니까요.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오히려 우리 앱이 퍼지게 만든 원동력이었어요.
왜냐면 이게 진짜 신기하고 멋있으니까,
사람들이 굳이 시간을 들여서 “야 너도 이거 다운받아봐, 내가 보여줄게” 하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 거예요.
그게 작동했던 거죠.
그리고 ‘프래그머틱 페이스’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고도 말했죠.
그게 Y Combinator에서 유이(유이시)랑 했던 토크에서 나왔던 이야기기도 하고요.
그건 이따가 다시 얘기하고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당신은 전혀 다른 세 가지 제품을 만들었죠.
‘범프’의 제품-마켓 핏을 지금 다시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그때 우리가 ‘핏’이라고 믿었던 게 정말 그랬을까요?
음, 제품-마켓 핏이라는 건,
지금도 여전히 굉장히 주관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정말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고객 기반에서는 제품-마켓 핏이 정말 좋을 수 있는데,
그걸 다른 고객군에 확장하려 하면
“아, 여기선 안 맞네” 싶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우린 제품-마켓 핏을 달성했어”라고 말하는 건,
사실 되게 ‘단계적인 질문’이에요.
궁극적으로 소비자 시장에서 엄청난 스케일로 성장하려면,
‘진짜 큰 사용자 층’과 제품-마켓 핏을 맞춰야 해요.
지금 구글 포토의 경우만 봐도 그래요.
우린 분명히 전 세계 수많은 사용자들에겐 제품-마켓 핏이 맞아요.
하지만 또 다른 사용자 군에게는,
“아직 완벽하게 핏이 맞는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만들어야 할 게 있거든요.
왜냐면, 사용자 수가 10억 명, 혹은 그 이상이 되면,
그 다음에 가입하는 사람은,
첫 번째로 가입했던 사람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그래서 진짜 제대로 이해해야 해요.
그럼 범프 이후에 만든 제품 얘기로 넘어가 볼게요.
바로 그다음 제품이 플록(Flock)이었죠?
맞아요.
범프는 연락처 공유 문제를 해결하려고 만든 앱이었는데,
사람들이 사진 공유용으로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애플이 아이폰에서 사진에 접근할 수 있는 API를 열었고요.
그래서 “오, 그럼 우리도 그냥 사진 공유 기능 추가해보자. 간단하잖아” 하고 넣어봤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그걸 진짜 많이 쓰는 거예요.
결국 그 기능이 범프에서 가장 많이 쓰인 기능이 됐어요.
그러던 중, 아마 2012년 초쯤이었을 거예요.
제가 대시보드를 보면서 “이 앱은 더 이상 커지지 않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때 YC 시절에 PG가 해줬던 조언이 떠올랐어요.
“막혔을 때는 항상 사용자한테 가서 물어봐라.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줄 거다.”
그래서 “좋아, 전 세계에서 범프를 제일 많이 쓰는 사용자 100명을 뽑아줘”라고 했고,
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날 제이크랑 저랑 회의실에 들어가서,
전화할 수 있는 사람한테 최대한 많이 전화했어요.
“안녕하세요, 저희가 범프 만든 사람인데요.
어떻게 쓰고 계신지, 어떤 점이 좋고 불편한지 듣고 싶어요”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대부분이 했던 말이 이거였어요.
“저요? 연락처 공유용으로는 안 써요.
남편이랑 사진 공유하려고 써요.”
우린 “뭐라고요? 그냥 이메일로 보내면 되잖아요. 왜 굳이 범프로요?” 했더니,
“그게 더 쉬워요.
그리고 고화질 원본 그대로 보내지니까 좋고,
첨부파일 문제나 메일 튕길 걱정도 없고요.
그냥 간편해서요.”
이런 답이 돌아왔어요.
우린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달았죠.
이건 친구나 가족 간의 사진 공유 문제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진짜 문제’구나.
하지만 우리가 만든 제품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엔 너무 불편했어요.
왜냐면 상대방도 앱을 깔아야 했고,
서로 멈춰서 “자, 지금 범프하자” 해야 했거든요.
물리적으로도 서로 ‘툭’ 부딪혀야 했고요.
보통은 제품 만들 때,
사용자 경험에서 마찰(friction)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마찰을 최대화한 구조였던 거예요.
그래서 우린 생각했어요.
“마찰을 줄이는 방향으로 다시 만들어보자.”
그렇게 해서 나온 게 ‘플록’이라는 앱이었어요.
그게 정말 운 좋게도 타이밍이 딱 맞았어요.
제이크랑 제가 그 회의실에 앉아서 방금 그 인사이트를 얻고 있던 그때,
우리 엔지니어링 팀은 범프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었거든요.
그 알고리즘은 진짜 초기 형태의 패턴 매칭 기반 AI 시스템 같은 거였어요.
여러 신호들을 사용해서 “이 사람이 지금 이 사람과 범프하려고 한다”는 걸 예측하는 거였죠.
모든 게 서버 기반이었고, NFC도 없었고요.
그러니까 거의 마술 같은 시스템이었어요.
근데 우리 엔지니어들이 그러는 거예요.
“데이브, 우리가 내일 누가 누구랑 범프할지 예측할 수 있어요.”
제가 “진짜? 그걸 어떻게 알아?”라고 했더니,
이런 식으로 설명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사진을 찍었는지,
카메라 롤의 메타데이터를 보면 된다는 거예요.
그 데이터를 보면,
“음, 구스타프랑 크레이그가 내일 범프할 확률이 80%네요.”
이런 식으로요.
전 “에이, 설마”라고 했죠. 근데 진짜였어요.
오늘 너희 둘이 YC 사무실에 있었고,
둘 다 거의 동시에 사진을 찍었잖아요?
그러면 내일 그 사진을 서로에게 범프할 확률이 꽤 높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기술적인 측면에서 얻은 핵심 인사이트였어요.
이걸 바탕으로 저희는 두 가지 인사이트를 결합해서
새로운 제품 ‘플록’을 만들 수 있었죠.
플록은 당신의 페이스북 친구 목록을 참고해서,
당신이 어떤 친구랑 동시에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지를 파악했어요.
그리고 나서 “이 사진을 공유하실래요?” 하고
추천 알림을 띄우는 거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진이 자동으로 공유되는 구조였어요.
저희는 이 앱을 출시하기 전에
우리 가족, 친구들과 함께 직접 써봤어요.
그리고 다들 느꼈죠.
“와, 이거 진짜 좋다.”
삶이 더 편해졌고,
예전엔 절대 받지 못했을 사진들을 얻게 됐어요.
그리고 저희는 이걸 정식 출시했죠.
근데 아무도 다운로드를 안 했어요.
우리는 “아... 망했다...” 싶었어요.
우리가 그때 정말 몰랐던 것,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건,
크리스 딕슨의 블로그 글에서 나온 개념이었어요.
바로 “도구 때문에 오고, 네트워크 때문에 남는다(Come for the tool, stay for the network)”라는 아이디어요.
즉, 제품의 초기 사용자들은
세상에 그 제품을 쓰는 사람이 자기 하나밖에 없어도
혼자서도 충분히 쓸만한 유용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근데 플록은 그게 없었어요.
내가 플록을 깔면,
“좋아요, 이제 친구들에게 이 앱을 깔도록 설득하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제야 내가 이 앱에서 뭔가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구조였죠.
근데 사람들 대부분은
“오, 홈스크린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그냥 잊어버렸어요.
우리가 거기서 얻은 핵심 인사이트는,
“자동 사진 공유 문제를 진짜로 해결하려면,
우리는 더 상위 계층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즉, 사용자 흐름상 한 단계 위로 올라가야 했어요.
바로 ‘카메라 롤’ 자체가 되어야 했죠.
우리가 카메라 롤이 된다면,
사람들은 어차피 우리 앱을 계속 쓸 테고,
그 위에서 공유 기능이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게 우리가 만든 세 번째 제품으로 이어졌어요.
근데 그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인사이트는
어떻게 얻게 된 거예요?
음... 거의 모든 친구들이 이 앱을 안 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왜 안 써?” 하고 물어봤죠.
사용자 인터뷰를 계속했어요.
YC 네트워크에 있는 많은 사람들한테 가서
“내가 보니까 너 플록 다운로드한 거 로그에 찍혀 있는데 왜 안 써?” 하고 물어봤어요.
그럼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말했어요.
“음... 아직 내 친구들이 안 깔았거든.
근데 걔네가 깔면 진짜 좋을 것 같아.”
근데 그 말의 의미를 잘 해석해야 해요.
실제로는 ‘나조차도 이걸 설치하도록 친구들을 설득할 만큼 간절하지 않다’는 뜻이에요.
근데 범프 때는 친구에게 설득했단 말이죠.
그 차이점은 뭐였을까요?
바로 ‘신기함’이었어요.
범프는 “이거 진짜 신기해. 너도 이거 써봐. 폰끼리 탁 치면 돼” 하는
그 물리적인 요소가 있었어요.
근데 플록은 그게 없었어요.
그 당시 이미 사진 공유 앱은 많았고,
사람들은 “아, 또 다른 사진 공유 앱이야?”라는 부담을 느꼈죠.
“내가 이 앱을 설치해야 하니까, 너도 좀 깔아줘”
“그러면 같이 쓸 수 있어”
이걸 설득하는 게 너무 피곤한 거예요.
그래서 실패한 거예요.
그리고 사실, 그 물리적인 어색함이 사람들 눈에 띄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포켓몬고 같은 앱 보면, 사람들이 거리에서 휴대폰 들고 막 뛰어다니잖아요.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쟤 뭐 하는 거지?" 하고 관심을 갖게 되죠.
근데 대부분의 앱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냥 조용히 휴대폰 들여다보고 있는 거니까,
그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몰라요.
근데 범프는 물리적인 상호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눈에 띄었어요.
그게 꽤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는 게 있어요.
처음으로, 제 친구가 아닌 어떤 낯선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범프를 사용하는 걸 봤을 때였는데요,
그게 정말 강렬한 느낌이었어요.
“와, 쟤네 방금 진짜로 범프 썼어.”
그게 진짜 신기했죠.
그 당시가 사진 공유 시장에서도 진짜 중요한 전환점이었어요.
2012년이었고, 인스타그램이 이제 막 출범한 지 1년 정도 됐고요.
타임라인도 막 생긴 시점이었어요.
그때 당시, 사진 공유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있었나요?
지금 돌이켜 보면 다 당연하게 보이지만,
그때도 그 흐름을 미리 감지할 수 있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우리도 잘 몰랐어요.
이성적으로 이해했다기보단, 감정적으로, 개인적으로 이해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사용했던 방법 중에 하나는
PG가 말했던 테크닉이었어요.
“훌륭한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싶다면,
그 분야에서 미래의 끝자락에 가서 살아봐라.”
즉, 파워 유저가 되라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디어가 그냥 눈앞에 보인다는 거죠.
이론적으로 다 이해하진 못해도,
“이건 진짜 유용하네. 이거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우리가 딱 그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해요.
근데 그 당시엔 저희도 그걸 의식하진 못했어요.
전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 중에서 항상
사진을 정리하고, 사진을 꼭 찍자고 말하던 사람이었어요.
항상 부모님께 “슬라이드쇼 밤 한 번 하자”라고 했고,
“이 사진 속 사람들 누구야?” 하고 물어보는 사람이 저였어요.
지금 돌아보면, 전 그 분야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있었던 거죠.
그 당시에도 우리는 아이폰을 엄청 많이 쓰고 있었고,
사진도 계속 찍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여러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죠.
예를 들어, “아이폰 저장 공간이 거의 다 찼네?
이제 맥북으로 옮겨야지.”
이렇게 케이블 연결해서 옮겼어요.
근데 보통 사람들은 그냥
“공간 부족하네. 사진 몇 장 지워야겠다”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아, 그건 좀 안타깝다.
굳이 그런 일 안 해도 되게 만들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 문제들이 플록에서 얻은 실패와
또 동시에 우리가 직접 겪고 있던 문제들과 합쳐지면서,
“사진이라는 건 정말 더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근데 그걸 해결해주는 제품은 아직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세 번째 제품을 만들게 됐죠.
그게 바로 ‘포토롤(photo roll)’이라는 제품이었어요.
기본 사진 갤러리 앱보다 더 나은 앱이었죠.
그때 마침 ‘인박스(Inbox)’라는 이메일 앱이 나왔던 시기였어요.
혹시 기억하시려나 모르겠지만요.
그 앱이 “기존 이메일보다 더 나은 이메일 클라이언트”를 표방했잖아요.
우리는 똑같은 방식을 사진 앱에 적용해보려고 했어요.
그냥 사람들이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 받아서,
기본 사진 앱 대신 쓸 수 있는 앱이었죠.
저희는 실제로 그 앱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제 폰에 설치해서 직접 쓰고 있었어요.
그게 진짜 좋았어요.
거기에 플록 기능도 옆에 같이 넣었죠.
그러니까 사용자들은 그냥 “더 나은 사진 앱”을 다운받기만 해도 되고,
그 다음에 친구들도 쓰기 시작하면
자동으로 사진 공유 기능이 활성화되는 구조였어요.
문제는, 우리가 그 인사이트를 진짜 제대로 얻은 시점이
우리가 확보한 2천만 달러 자금이 거의 다 떨어져 갈 때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깨달았죠.
“이 포토 제품은 진짜 대박이다.
이걸 길게 가져갈 수만 있다면 제대로 터질 거야.”
근데 문제는...
우리가 이걸 하기 위해서는
범프라는 이름으로 시리즈 C 투자를 또 받아야 했던 거예요.
근데 시리즈 C 투자를 받는다고 해도,
우리는 그 돈을 원래의 범프 제품에 쓰는 게 아니잖아요?
그 1억 5천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던 기존 제품이 아니라,
완전 다른 신제품을 위해서 쓰는 거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테이블에 앉아서 진지하게 말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나라도 이 회사에 투자 안 하겠다.”
우리 투자자들한테도 다 얘기했어요.
그리고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VC들한테 투자를 받았거든요.
세쿼이아로부터 시리즈 A, 혹은 그 전에 다리 역할을 해준 라운드도 있었고요.
그 전에는 론 콘웨이한테도 받았고,
그리고 시리즈 B는 마크 안드리센, 그러니까 안드리센 호로위츠한테 받았어요.
진짜 말 그대로 정점에 있는 투자자들이었죠.
우리는 굉장히 운이 좋았고,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는 좀 순진하기도 했어요.
우리가 진짜 엄청난 회사를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랐고요.
사실 투자자들도 몰랐다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가 모두 알고 있었던 건,
모바일이라는 게 엄청난 물결이라는 거였고,
그게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커질 거란 사실이었어요.
그리고 그 시점에서 범프는 모바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앱이었어요.
또 어떤 핵심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그게 투자자들의 투자 논리였던 거죠.
그게 저희가 MBA를 중퇴하고 이걸 하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해요.
“지금 잘 되고 있고, 모바일은 앞으로 엄청 커질 거야.
이 기회를 잡자.”
그게 저희의 투자 논리였어요.
그럼 그 당시 펀딩 경험은 어땠어요?
솔직히 말하면, 정말 쉬웠어요.
이런 말 하긴 죄송한데, 진짜 엄청 쉬웠어요.
우리는 YC 안에서 사용자 수가 400만 명이었나, 아니면 800만 명이었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어쨌든 YC에 있는 동안 그런 사용자 수를 기록했어요.
그건 그 당시 기준으로는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수치였죠.
그러니까 모두가 우리한테 투자하고 싶어 했어요.
우리는 세쿼이아 사람들을 만났고,
“오, 괜찮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라운드를 유치했죠.
그리고 아마 6개월 정도 지난 후였어요.
마크(안드리센)가 저한테 이메일을 보냈어요.
“나 투자하고 싶어.”
그래서 제가 답했죠.
“마크, 나 방금 시리즈 A 마쳤고, 아직도 200만 달러가 남아 있어.
무슨 말이야?”
그랬더니 마크가
“그래도 난 이게 크게 될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투자하고 싶어.”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미팅을 잡았고,
결국 그 미팅을 6개월쯤 미뤘다가
안드리센 호로위츠한테서 1,700만 달러를 시리즈 B로 받았어요.
그리고 그 투자도
“이게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뭔가 되게 흥미로운 방향으로 갈 거야”라는 논리에 기반한 거였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리즈 B에서 조금만 덜 받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랬다면 아마도
이런 존재론적 질문들을 더 일찍 하게 됐을 거고,
좀 더 빠르게 핵심 논의에 들어갔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너무 많은 여유 자금이 있으니까,
“뭐, 나중에 생각하지 뭐” 하면서
그냥 계속 가게 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지금 스타트업 창업자들이랑 얘기할 때 자주 나오는 질문이
이거예요.
“투자 유치가 잘 되고 있는데,
또 다른 투자자가 지금 300만 달러를 더 넣고 싶어 해요.
희석(dilution)이 좀 있긴 한데, 받아야 할까요?”
그럼 제 답은 항상 이래요.
“만약 네가 정말로 절제력이 있고,
그 중 절반은 다른 은행 계좌에 넣고
12개월이나 18개월 동안 손도 안 댈 자신이 있다면,
받아도 돼.”
근데 현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절제력이 없어요.
그리고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자기 돈이 그냥 통장에 앉아있는 걸 보고 싶어 하질 않아요.
아무도 “LP 계좌에서 자본 일부를 창업자 통장에 옮겼는데,
걱정 마세요. 그냥 거기 앉아 있어요.
이자도 1%쯤 붙고요.” 이런 말 듣고 싶어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진짜 어렵죠.
제가 창업자들에게 해주는 조언은 이거예요.
“지금 당장 그 돈을 어디에 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그때만 더 많은 돈을 받아라.”
“그냥 여유자금 좀 생기면 좋겠지~” 정도라면,
그건 안 돼요.
그건 네 사업 모델이 이미 입증됐고,
이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단계일 때만 가능한 전략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투자한 Flexport 같은 회사는
얼마 전에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받았어요.
그 CEO가 그 돈을 어디에 쓸지 지금 당장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는 분명히 알고 있어요.
“내 사업은 지금 잘 굴러가고 있다.
이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돈이 더 필요해.”
그럴 땐 괜찮아요.
근데 아주 초기 단계에서는
그냥 무턱대고 돈을 더 받는 건 정말 신중해야 해요.
그럼 돌이켜봤을 때,
그 일들을 잘 수습해서 실제 수익성 있는 제품으로 전환할 수 있었을 것 같나요?
아, 전 우리가 범프를 수익성 있게 만들 수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규모가 크지 않았을 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범프를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는 만들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세쿼이아’나 ‘안드리센 호로위츠’ 같은 VC들이 기대하는 스케일은 아니었다는 거죠.
그래서 만약 우리가 VC 투자를 아예 안 받았더라면,
정말 괜찮은 사업이 됐을 수도 있어요.
우리는 아마 프리미엄 모델로 갔겠죠.
사용자 중 1% 정도만 1달러씩 결제해도 되는 구조요.
그럼 충분히 괜찮은 수익이 됐을 거예요.
문제는, 그 다음 단계였어요.
우리가 포토롤을 가지고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하려고 했을 때,
그 제품은 아직 수익이 전혀 나지 않는 제품이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포토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이 이거 진짜 좋아할 거야.
이거 진짜 크게 터질 수 있어.”
“만약 이걸 운영체제 안에 포함시키거나,
애플이나 구글 같은 데서 배포해주면,
정말 엄청날 거야.”
근데 동시에 우리는 또 이런 생각도 했죠.
“아, 근데 그러려면 돈이 진짜 많이 들겠다…”
왜냐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진을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게 비용이 엄청나잖아요.
그래서 계산기를 두드려봤죠.
“세상의 모든 사진을 저장하려면 얼마가 들까?”
답은… 진짜 비쌌어요.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걸 제대로 하려면,
정말 긴 시간을 두고 갈 수 있는 큰 조직 안에서 해야 한다.”였어요.
그러다 보니, 인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거죠.
우리는 여러 선택지를 놓고 비교했어요.
그 가운데 구글이 있었고,
구글과는 궁합이 정말 잘 맞았어요.
구글의 미션은 “세상의 정보를 정리해서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하고 유용하게 만든다”예요.
그리고 우리가 생각한 구글 포토의 미션은,
“당신의 모든 사진을 저장할 수 있는 집이 되어주고,
그걸 당신에게 최대한 유용하게 만들어주고,
그 사진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생각한 미션과 구글의 미션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던 거예요.
그리고 문화적인 면에서도 잘 맞았어요.
범프에 있던 우리는 좀 괴짜 같은 사람들이었거든요.
물리학 좋아하고, 수학 좋아하고, 약간 그런 분위기였죠.
근데 구글에 갔더니,
“어? 여긴 우리랑 비슷한 사람들이 많네?” 하고 느꼈어요.
반면에 우리가 페이스북이나 애플이랑 얘기해봤을 땐,
그 DNA가 우리랑 잘 안 맞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구글이 더 끌렸죠.
그럼 그때 당신이 합류한 팀은 안드로이드 쪽이었나요?
아니면 구글 포토 팀이었나요?
원래 구글은 피카사(Picasa)라는 제품을 인수해서 사진 쪽으로 진출했었죠.
그게 2005년쯤일 거예요.
피카사가 나중에 피카사 웹으로 바뀌었고,
그러다가 구글 플러스가 나오면서
그 기능들이 구글 플러스 안으로 통합됐어요.
우리가 구글에 합류한 건 2013년 가을이었고요,
그때 구글은 구글 플러스에 정말 올인하고 있었어요.
사진 관련 기능들도 점점 구글 플러스에 더 많이 들어가고 있었고,
그걸 통해 사용자들이 사진을 공유하게 만들고 싶어했어요.
우리가 구글과 처음 얘기했을 때는 안드로이드 팀이었어요.
그때 논의된 내용은,
“안드로이드의 갤러리 앱이 훨씬 더 좋아질 수 있다.
우리가 만든 이 앱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였죠.
그래서 인수는 결국,
포토롤을 가져다가 구글 스케일에 맞는 제품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었어요.
그 덕분에 우리는 구글에 합류하자마자,
“지금 구글 안에서 누가 어떤 걸 만들고 있지?” 하고 알아봤어요.
그 결과,
우리는 구글 플러스 내부의 사진 팀 일원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저한테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요.
이거 진짜 잘 될 것 같아요.
사적인 사진 관리 도구인데,
공유 기능도 있고, 인공지능 기능도 들어 있어요.”
근데 저희는 이렇게 덧붙였죠.
“근데 우리한텐 AI 기술이 없어요.
그냥 아이디어만 있어요.”
근데 주변을 둘러보니까,
“와… 여긴 진짜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팀이
얼굴 인식, 얼굴 묶기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고,
다른 팀은 이미지 콘텐츠를 자동으로 분석해서
이미지를 검색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을 만들고 있었어요.
또 다른 팀은
사진을 초대규모로 백업하는 인프라를 개발 중이었고요.
그걸 보면서 전 생각했죠.
“됐어. 이거 진짜 잘 되겠다.
여기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다.”
우리가 포토롤에서 가져간 건 이런 거였어요.
사람들이 사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사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리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통찰이었죠.
이런 사용자 관점에서의 디자인 감각,
어떤 기능이 있어야 사람들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
이런 것들을 우리가 가져갔고,
그걸 구글의 기술력과 결합시켰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의 구글 포토가 만들어졌죠.
실제로 지금은 모든 사진을 업로드하고 있잖아요, 그렇죠?
모든 앨범에 있는 사진들을 다 업로드하는 거죠?
네, 맞아요. 저희는 진짜 많은 사진을 매일 업로드하고 있어요.
그럼 공유 기능이라든가, 얼굴 인식, 검색 같은 건 알겠는데,
그 애니메이션이나 자동 콜라주 같은 건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온 거죠?
그 기능들의 상당수는 사실 구글 플러스 안에서 이미 하고 있던 일이었어요.
그 당시엔 사람들이 구글 플러스에 뭔가를 올리게 만들기 위해서
“이런 걸 만들어주면 사람들이 올릴 거야”라는 생각이었죠.
즉, 뭔가 ‘포스트할 만한’ 걸 만들어주자는 전략이었어요.
근데 우리가 구글 포토를 설계할 때는
좀 다른 접근을 했어요.
제가 자주 쓰는 접근법이 하나 있는데요,
그건 “사람이 대신 해준다면 어떨까?”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잠도 안 자고, 진짜 똑똑하고,
컴퓨팅 파워도 무한대인 슈퍼비서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 사진을 가지고 뭘 해줄 수 있을까?
이걸 상상해보는 거죠.
오늘 아침에도 저희가 이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만약 내 공동 창업자인 앤디가 내 사진 비서라고 치자.
그리고 하루 종일 내 사진만 도와주는 게 일이야.
그럼 앤디는 뭘 해줄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끼리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어요.
“자, 앤디가 할 수 있는 유용한 일들은 뭐가 있을까?”
예를 들어, 사진을 자동으로 정리해준다든가,
중복된 사진을 지워준다든가,
사진에서 누가 누군지 알려준다든가,
같은 장소에서 찍힌 사진들을 하나로 모아준다든가,
주말 여행 사진들을 묶어서 앨범으로 만들어준다든가,
아니면 내가 놓쳤던 순간을 다시 보여준다든가.
혹은, 내가 분명히 좋아할 만한 과거 사진을 찾아서
“이거 기억나?” 하고 보여준다든가요.
그런 걸 하나하나 상상해보는 거예요.
실제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그걸 기술로 치환할 수 있을지를 따져보는 거죠.
결국 그 철학이 구글 포토의 기반이 됐어요.